고양이 찰나

지금까지 긴긴 세월 살아왔으니. 죽지 않고 살아왔으니. 내 몸 반절의 반절의 반절도 안되는 작은 생명 정도는 껴안아도 되는 줄, 옆에 두어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기 고양이는 인간보다 성장이 빨라 금방 성체가 되었고, 첫째가 외로울까 데려온 그 아이도 똑같이 나이를 먹었다. 이제는 세월도 많이 흘러, 첫번째 고양이, 두번째 고양이, 그리고, 나까지 꼬박꼬박 똑같은 세월을 먹는다. 나이를 먹는다.

두번째 아이가 나를 올려다본다. 사료 한스푼 먹었는데, 두번째 스푼 먹을 수 있냐고. 매번 한스푼도 한두알 남기는 아이라, 한스푼만 덜어주는데, 오늘은 더 먹고 싶은가 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이는, 고양이는, 혼자서는 사료통 뚜껑도 열지 못한다. 내가 사료통을 열고 스푼으로 사료알들을 그릇에 담아주어야 그것을 먹는다. 그릇 바깥에 흩어진 두어 개의 사료알을 먼저 주어먹고서야, 그릇 안에 오소소 담긴 사료알들에 입을 갖다대는데. 아이의 세상에서 나는 배고픈 배를 채워주는, 게으른 신인 거다. 늘, 항상 신선한 사료알들이 담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많이 담아 사료알들이 눅눅해지게 만들고, 어떤 때는 적게 담아 한스푼 더 담아달아 요청하게 만드는, 허술하고 대충대충인 이. 밥을 먹을 때도, 물을 먹을 때도, 화장실 모래를 치워줄 때도, 같이 잠을 잘 때도, 늘 불규칙하고 기분대로인 이.

오늘 새삼 고양이들에게 미안해진다.

인간이 없으면 살 수 없도록 만들어놓고, 정작 동거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니. 이 작은 생명에게 나는 무슨 만용을 부린 것일까. 고양이들은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고, 사랑이 고프다. 데려온 이로서, 고양이들을 채우는 일은 나의 할 일인데도 나는 나 자신조차도 주체를 못해 휘청인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백번을 말해도, 나는 나도 돌보지 못하는데 어찌 너희들을 데려왔을까. 보송보송한 털, 따스한 체온, 품안에 고스란히 안기는 생명의 무게가 그리웠다. 그래서 욕심냈다. 그런데, 너희들은 정말로 행복한 것이냐.

미안하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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