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 바다] 결혼과 교회, 가부장제도의 진짜 속살 REVIEW_MOVIE

이 영화가 장애인 커플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라는 것을 안 시점에서 나는 일부러 앞선 리뷰들을 읽지 않았다. 선입견이 얼마나 영화 감상의 본질을 가리는지 알기 때문이다. 단지, 우연히 열어 본 한 리뷰어의 글에서 "씁쓸한 뒷맛"이라는 표현을 발견하고는 도대체 감동이나 눈물이 아닌 (내가 인권 다큐에서 원했던 감상의 천박한 레벨이다.) 어떤 씁쓸함일까 궁금한 마음은 갖고 갔다. 그리고 막상 스크린에서 확인했던 폭력 앞에서, 모호했던 그 표현이 얼마나 많은 것에 대한 침묵이었는지 놀라고 말았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삶을 누릴 권리는 똑같다. 정신장애나 신체장애가 있어야 장애인이라는, 차별된 시선을 받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비교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조금이라도 약하고 소외되고 소수인 상대에게는 얼마든지 생각의 폭력을 휘두른다. 연애 시장에서도 결혼 시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그들의 연애와 결혼을 미화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을 비장애인이라 인식하며 안도하는 입장에서의 폭력이다. 영화에서도 감독의 시선은 연애와 결혼의 적나라한 폭력성을 조금도 가리지 않는다. 러닝타임이 조금씩 줄어들수록 나는 기가 막혔다. 내가 발견한 폭력의 양상은 아래와 같다. 

1. 결혼에 대한 현실감각이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제제 쪽이다. 제제는 결혼해서 겪게 될 환경의 변화, 자신이 감당해야 할 역할의 구체성을 알고는 자신이 없다. 자신이 결혼이라는 거래를 통해 얻을 것이 없다는 걸 알지만, 그들의 모친, 복지사 및 가족들, 교회 식구들, 그리고, 가장 문제적인 인물인 우영은 그녀에게 '사랑'이라는 모호한 단어만 동어반복하며 그녀를 종용한다. 관계는 언제라도 지옥이 될 수 있다. 가족도 연인도 부부도 얼마든지 갈등과 고통으로 갈라설 수 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결혼에서 생길 수도 있는 리스크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저 시집 가라, 금방 노처녀 된다, 주름이 생기면 상품성이 떨어질 것이다, 결혼 해 줘, 프로포즈를 받아줘, 느그 오빠한테 가삐라, 그저 등을 떠미는 상황 밖에 없다. 제제는 언어적 표현이 서툴다. 그런 그녀에게 종용과 협박과 반복되는 사랑에 대한 언급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우물쭈물하다가 제대로 거절하지 못하고 결혼을 받아들인다. 프로포즈를 받아들이면서 택일하는 과정, 척수장애인과의 섹스를 교육받는 과정을 보라. 두 사람은 8년을 만났지만, 아직 성을 경험하고 감당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그녀가 과연 시어머니와 함께 하는 동거와 처음 연습하는 섹스에 익숙해질 수 있을 것인가.

영화의 중간, 제제의 생리주기에 대한 대화 내용이 나올 때 나는 드디어 두 사람이 부부로서의 성을 배우고 있다 생각했다. 콘돔 사용이 어려울 수 있으니 배란일을 피하는 피임법을 공부하는 건가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제제의 생리주기는 그저 결혼식 택일을 위해 필요할 뿐이었다. 제제는 가을에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나, 그 결혼식에서 제제의 목소리는 전혀 고려대상이 되지 않았다. 

제제에게 연애하다 언제라도 헤어질 수 있고, 결혼하지 않는 선택도 있다는 것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제제는 정말로 원해서, 제대로 이해해서 이 결혼을 한 걸까. 

2. 우영과 우영의 가족은 제제를 용도로만 생각한다. 우영이 프로포즈를 반복하는 과정에는 결혼이라는 삶을 반씩 나누자는 구체적인 제안은 없다. 우영은 그녀의 고민을 진심으로 경청했는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충분히 질문하고 그녀의 고민을 알기 위해 노력하였는가. 그는 또한 결혼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가. 그녀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결혼의 의미를 충분히 전달했는가. 

결혼식이 끝나고 우영이 제제를 아줌마라고 하자, 제제는 자신이 아줌마인 열가지 이유를 대라고 한다. 그러자, 우영은 자신이 생각하는 제제의 결혼 이후를 대략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시어머니 눈치를 봐야 한다. 밥해줘야 한다. 애들 걱정해야 한다. 아껴써야 한다. 남편이 올 때까지 자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결혼식에서 주례를 선 목사님의 말씀도 똑같다. 

복종과 순종. 교회와 신의 논리는 우영이 제제에게 아내로서의 의무를 강제할 권리를 준다. 웃으면서 읊조리는 우영의 아내 아니 아줌마 덕목들은 제제를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가정가사 능력, 출산과 양육의 의무를 강조할 뿐이다. 제제는 결혼해서 과연 무엇을 얻는단 말인가. 

우영 어머니의 나레이션 또한 제제가 직접 들으면 경악할 내용들이다. 제제의 마음, 제제의 성격, 제제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없고, 체격이 작고 몸이 약하고 언어 표현이 제대로 안되는 장애인으로서 보는 시선 밖에는 없다. 내가 없을 때 밥이라도 차려줄 수 있는 존재. 이런 결혼을 왜 해야 하나요. 

3. 결혼은 결코 남이 부추길 일이 아니다. 출산 또한 마찬가지다. 가족이라도 결혼과 출산은 강요할 수 없다. 비장애인도 여러가지 이유로 결혼과 출산, 연애를 미루거나 포기한다. 그런데, 장애인이기 때문에 결혼의 기회가 감지덕지이지 않냐 종용할 수 있는가. 그들의 가족과 복지사, 교회 사람들은 왜 그렇게도 당당하게 등을 떠미는가. 

4. 사랑만으로는 결코 생활을 만들 수 없다. 우영은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고, 아마도 평생동안 가족과 복지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제제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정말로 결혼이었을까. 더 많은 사회 참여 기회와 더 나은 복지 서비스는 아니었을까. 장애인이기 때문에 단순 작업을 하는 직업만을 가져야만 하나. 더 다양한 교육의 기회와 세상의 차별적인 시선들과 싸울 수 있는 자존감 상담은 아니었을까. 

장애는 선천적으로도 후천적으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우리는 비장애인이 아니라 미장애인일 뿐이다. 노화로, 병으로, 사고로 우리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장애인과 장애인의 가족들이라고 해서 고개를 못들고 다녀야 한다면, 평생의 업으로 알고 감당해야 할 고통으로 안다면, 그것이 어떻게 인권이라는 단어가 의미있는 사회인가.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가족이 의미가 생긴다면, 그것이 정의인가. 결혼이 사랑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해주지도 않고 선택을 종용하는 폭력이 사랑으로 포장될 수 있는가. 그들의 보호자와 교회와 사회, 그리고 무엇보다 8년을 함께 해 온 연인이 제제에게 눈가리운 가부장제도의 진실. 이 영화가 연애와 결혼의 거래적 속성을 외면하고자 하는 모든 초보 커플들에게 진실된 소통의 열쇠가 되기를 바란다. 







별 OO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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