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REVIEW_MOVIE

트란 얀 홍 감독. 우리 때에는 이렇게 표기했는데, 요즘은 뭐라고 표기하는지 모르겠다.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상실의 시대라고 번역해서 더 잘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 

마츠야마 켄이치 주연. 

나의 스무살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인생의 필수요소 같은 느낌이었고, 전세계의 젊은이들이 동시에 같은 작가를 읽는 듯, 외국에서 온 친구들도 하나같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얘기해서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지금 보는 상실의 시대는 왜 이 따위세요, 싶다. 

와타나베도 미도리도 나오코도 레이코 여사도 다들 왜 이러세요. 왜 와타나베와 섹스를 못해서 난리야. 와타나베는, 대학생 되면 (혹은 어른 되면) 실컷 섹스할 수 있어, 를 동경하며 자란 아이일까. 마치 스무살 소년의 판타지를 보듯, 전부 섹스에 대한 이야기만 해. 갑작스런 비극이 찾아온 우울한 청춘의 한 때라는 건 알겠지만. 제발 본론을 갖고 살라고, 이 사람들아. 죽음과 섹스와 우울과 사랑과 낭만을 한데 뒤섞지 말라고. 캡션만 잔뜩 붙은 사진집을 보는 듯한 느낌. 왜 스토리는 없는데. 도대체 뭘 얘기하고 싶은 건데. 

내가 읽은 상실의 시대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너무 오래 되어서 기억이 안나는데, 정말로 이런 줄거리였던가 생각하면 경악스럽다. 당황스런 마음에 생각했다.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번역본이 아닌 원본으로 읽어봐야겠어. 어쨌거나 애증의 무라카미 하루키니까, 다시 한번 돌아가봐야겠어, 과거의 나에게. 여전히 20대의 청춘들에게 청춘의 교과서처럼 다가가는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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